힘차게 날아오르는 새가 중력을 거슬러 비상하는 모습을 바라본다. '자유'의 찰나. 하늘로 향하는 새의 움직임은 끌어당김에서 벗어나고 지구의 중심으로 향하던 힘은 사라진듯, 하늘로 향하는 관성이 새가 날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계속 더 움직이도록 돕는다. 역방향의 움직임에는 최소한 그 끌어당기는 힘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고 일단 이 역방향이 힘을 받아 작동하기 시작하면 이제 그 방향이 진짜 방향이며 훨씬 적은 힘으로 방향을 유지할 수 있다. 역방향으로 힘을 가하는 것 역시, 연습을 거듭하여 쉽고 편해지면 이것은 비로소 당연한 자유의 시작점이 된다.
지구의 중심을 향해 나의 질량만큼 잡아당기는 물리적 중력이 내가 벗어나야 하는 힘의 전부는 아니다. 단지 산을 오르는 것만으로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자유는 유한하고 나의 진정한 자유는 나의 마음과 정신이 나 자신으로부터 굵은 흐름으로 꺾이지 않고 뻗어나갈 때 가능하다. 시류든 중력이든, 느릿하고 강요하지 않지만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힘에 끌린 이동 한 가운데서 작은 점 하나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룩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쩌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기도 버거울 수 있겠다.
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, 그것은 누구도 정의할 수 없고 확인할도 없는 영구미제의 질문이지만, 나는 감히 쓰고 싶다. 인간 누구나 역방향의 흐름을 꿈꿀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.
우리는 더 편하고 더 쉬운 것으로, 더 재미있고 더 설득하는 것으로 움직이는 시대를 살고 있고 그 흐름은 더욱 빠르고 거대한 힘으로 쓸어 나가는 듯 보인다. 중력에 중독되어 더욱 아래로, 더욱 아래로. 당신은 땅굴을 파고 들어갈 것인가. 당신이 원하는 것은 이 빠른 조류에서 더 빠르게 먼저 흘러 하데스의 타르타로스까지 하루 바삐 닿는 것일까. 그곳에 무엇이 있기 때문인가. 그것은 거기에만 있는 것인가. 승리인가. 승리는 행복인가.그 행복은 당신을 기쁘게 하는가. 그것으로 당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가.
가끔 우리는 목적지로 향하지 않는 조류에서도 더 내달리기 위해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것 같다. 왜 의심하지 않는가.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면 나쁜 사람인가. 모두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함께하면 그것은 당신을 안심시키는가. 안도는 행복인가. 안도가 당신의 목표인가. 불안함은 슬픔인가. 나는 궁금하다.
조류를 타고 가면서 더 빨리 목적지에 닿는 경쟁도 쉽지만은 않은데, 그렇게 힘들여 도착한 곳이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면, 그럴 수 있다면, 우리는 지금 잠시 흐름의 가운데 멈춰 서야 하지 않을까. 어느쪽도 택하지 않고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댓가를 치러야하는데 사람들은 그 시간과 노력조차도 아까워하는 것 같다. 일단 먼저 도착하고 보자, 그것이 공리(公利)인듯 하니 멈춰서 생각해보자는 말 조차도 반역자처럼 보이는 세상이다.
나는 아이들에게 중력을 거슬러 비상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다. 연습시키고 싶다. 자유롭게 날 수 있게. 단 하나의 점이 강 한가운데 떠서 기를 쓰고 반대로 가는 것이 외롭고 불가능할 것 같아도, 필요하면 그렇게 하라고 지지해줄 것이다. 내가 바람이 될 수 있다면 여린 날개 밑에 공기를 불어 주고 뗏목에는 순풍을 불어줄텐데. 연어의 거룩한 모성애에 닿을 수 없는 한없이 부족한 사랑이라, 그저 소리 없이 응원해 줄 뿐이다.